<He Puru Taitama(나는 젊고 힘센 황소예요)>는 뉴질랜드 마오리 사람 킹기 타히위(Kīngi Tāhiwi)가 1909년에 작사, 작곡한 노래다. 그는 당시 오타키(Otaki)에 살던 마오리 여자 제인 암스트롱과 결혼하고 싶어서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로펌에서 일하는 평범한 남자였던 타히위는 건장한 육체를 가진 젊은 농부들과 한 여자를 놓고 경쟁해야 했는데, 세 보이려고 이런 가사를 썼다고 한다. 마오리 사람들은 이 노래 가사가 노골적이고 음탕해서 어린이들이 듣거나 부르기에 부적절하다고 말한다. 젊은 황소라는 비유가 그렇게 음탕한지 나는 감이 안 오는데 들판에서 황소를 보며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런가 보다. 성 요셉 마오리 여학교 학생들의 음색이 소박하고 폴리네시아풍 선율이 시원하다.
<He Puru Taitama>는 2차세계대전을 거치며 마오리 군인들에 의해 유럽으로 전파됐다. 잊기 어려운 단순하고 아름다운 멜로디라 여러 번 가사가 바뀌며 뉴질랜드, 하와이, 타히티 등 폴리네시아 지역에서 불리다가 <Epo I Tai Tai E(나는 행복할 거야)>라는 노랫말로 미국에 상륙해 걸 스카우트들에게 퍼졌다고 한다. 지금은 전세계 어린이들이 즐겨 부르는 동요다. 나는 2012년에 이 노래를 처음 들었고, 가사와 선율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다. 멜로디는 그대로인데 노랫말이 바뀌면 이렇게도 된다.
장강명의 소설을 영화화 한 <한국이 싫어서>를 봤다. 행복을 찾아 뉴질랜드로 떠난 스물 아홉 한국 여자 계나 이야기다.

“나는 한국에서도 2등 시민이야, 남자인 너는 이해 못해” 계나가 이민을 만류하는 남자친구에게 한 말이다.
이 영화는 한국 사회에서 젊은이로 살기도 힘든데 젊은 여성으로 살기는 더 힘들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한 영화가 아니다. 한국에서는 못 살겠어서 떠난 이민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보여 주려는 영화는 더욱 아니다. 삶의 조건을 바꿔 행복해지기에는 세상에 사람이 너무 많다는 걸 보여 주는 영화다.
이민(移民)은 가사 바꾸기인가, 선율 바꾸기인가? 가사를 바꾸면 의미가 달라지지만 선율이 바뀌면 느낌이 달라진다. 무슨 차이일까? 가사는 공간이고 선율은 시간이다. 의미는 인식 작용에 따라 바뀌지만 선율에는 바꾸기 어려운 그 시대의 공기가 뭍어 있다. 계나가 얻고 싶은 것은 행복이라는 느낌이다. 계나에게 이민이란 세상을 바꾸기는 너무나도 어려우니 나라도 바꿔 행복해 보자는 절박한 행동이다. 그런데 세상에 사람이 너무 많다. 뭐가 잘못된 걸까? 2015년 무렵 한국의 젊은 여성들은 그런 수행을 하고 있었다.
2024년 12월 14일, 대한민국 국회가 대통령 윤석열의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여의도에 모인 이백만 명의 시민들 중 2030 여성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들은 밝고 당당했다. 내란을 진압해야 한다는 목적의식이 분명해 보였다. 소녀시대 <다시 만난 세상>과 로제 <APT>를 합창했다. 가사의 의미, 선율의 정서보다 합창의 느낌이 더 중요해 보였다. 그들은 더 이상 공정을 구걸하며 타인을 배제하는 개인주의자들이 아니었다. 공정한 사회에서 열심히 돈을 벌면 행복해질 거라는 유혹이 사기란 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주체가 되기로 작심한 사람들이었다. 행복이 아니라 관계 자체가 목적인 사회를 추구하는 것 같았다. 드디어 세상이 바뀌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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