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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에세이

Morning Has Broken - Kaare Norge

by 조원석 2025. 2. 2.

  <Morning Has Broken>은 1971년 영국 가수 캣 스티븐스(Cat Stevens)가 불러 널리 알려졌다. 원곡은 19세기 초중반, 스코틀랜드 부네슨(Bunessan)에 살던 마리 막도날드(Mary MacDonald(1789-1872))가 부네슨 지역의 민요 선율에 스코티쉬 게일어 가사를 얹은 찬송가 <Leanabh an àigh(Child in a Manger)>다. 같은 선율에 1931년 잉글랜드 작가 엘레노아 파전(Eleanor Farjeon)이 영어로 작사한 노래가 <Morning Has Broken>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두 노래의 가사를 검색했다. 엘레노아 파전의 영어 시가 더 세련돼 보이지만 나는 마리 막도날드의 단순한 게일어 시 첫 구절에서 예상치 못한 감동을 얻었다.
 
  구유 속 아이, 마리아의 아기
  버림받은 낯선 사람, 모든 것의 주님
  우리의 모든 죄를 물려받은 아이, 우리의 모든 허물이 그에게 떨어집니다
 
  2024년 크리스마스 며칠 전, 퇴근 시간대 우이신설선 열차 안에서 젊은 한국 여성이 기독교 성경을 필사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한 적이 있다. 소박하고 진실해 보였다. 나는 왜 그 모습에서 감동을 받았을까? 마리 막도날드의 시를 읽다가 이해했고 공감했다.

  예수는 한없는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다. 나는 <구유 속 아이>를 읽으며 예수의 삶도 위대하지만 그 삶을 대하는 사람들의 연민이 더 위대한 게 아닐까 생각했다. 내가 밀라노에서 미켈란젤로의 조각 <론다니니 피에타>를 보고 느꼈던 감동이 무엇이었는지도 알았다. 가난한 마음에서 나오는 힘, 연민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예수의 님이라면 애처럽고 가여워 긔루은 마리아의 아기는 가난한 사람들의 님이다. 

  내 할머니께서는 어린 내게 가루약을 물에 타 수저에 얹어 먹이실 때마다 항상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는데 너는 이것도 못 참느냐?”
  어린 나였지만 그 말씀을 듣고 나면 약이 아무리 써도 안 먹을 수 없었다. 위대한 연민이다.

  2022년 4월 11일 저녁, 청령포 둘레길을 힘들게 달리고 나서 자동차를 타고 영월 초입 벚꽃길을 지나고 있었다. 라디오에서 덴마크 기타리스트 코어 노어(Kaare Norge)가 연주하는 <Morning Has Broken>이 나왔다. 갑자기 세상이 너그럽게 흘러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사회 로고를 박은 검정 스타렉스가 내 앞에서 석정여고 앞 신호를 무시하고 정문 쪽으로 급하게 돌아 달렸지만 당황하거나 화가 나지 않았다. 그 장면을 너그럽게 바라보는 내가 보였다. 일종의 환각 같았다. 선율에 내재한 관용(寬容)이라는 가치가 기타 배음(倍音)을 타고 퍼지며 봄과 공명(共鳴)하고 있었다. 가슴에서 너그러움이라는 느낌이 솟더니 머리로 상승해 관용이라는 관념이 일어났다. 세상이 온통 뿌옇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사월 저녁 봄날씨, 그 자체의 환각과 비슷했다. 이어서 한국 기타리스트 안형수가 연주하는 <나뭇잎 배>가 흘렀다. 따라 부르며 눈이 뜨겁고 아팠다. 

  “같은 조(調)로 이어지는 기타 연주를 들으며 같은 분위기를 느끼셨을 것 같네요.” 
  디 메이저(D Major)다. 전기현의 멘트에는 음악과 세상에 대한 수준 높은 해석이 들어 있다. 봄은 라장조로 시작하는 소리의 질서다. <세상의 모든 음악 전기현입니다>의 선곡은 내가 평생 들은 수많은 라디오 프로그램 중 으뜸이다. 

  음악은 언제 어디서 듣느냐에 따라 문학적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소리다. 가사가 없는 음악을 들으며 관용을 경험한 특별한 순간이었다. 그 순간의 시공이 소리라는 파동으로 내 몸 안에 들어와 기록되고 있었다. 어디에 기록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언젠가 그 기록이 어느 특정 시점에 스스로를 재생하는 순간이 도래할 것이란 사실은 분명히 안다. 좋은 순간만 기억하게 하는 기계가 있을까? 있다면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기계는 우연히 좋은 음악을 만나는 순간을 창조하는 지상파 라디오다. 달려야 들리는 음악이 있고, 불러야 들리는 노래가 있으며, 울어야 들리는 시가 있다. 오늘 나는 세 가지 소리를 다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