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부터 여름이 가는 게 몹시 섭섭했다. 놀아도 놀아도 크게 떠 있던 해가 고마웠다. 너무 더우면 시원한 달나라를 상상했지 여름이 가길 바라지 않았다. 할머니가 부르러 오실 때까지 놀았다. 기나긴 여름 속에 영원히 머물고 싶었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 친구들과 낙산해수욕장에 놀러 갔다. 해수욕장 풍경은 지저분하고 번잡했지만 내 마음은 대학생 누나들이 기타를 치며 부르는 싱그러운 노래로 설렜다. <여름>이었다. 나도 그 자리에 끼고 싶었지만 내 자리는 없었고 섭섭한 마음만 <여름>이라는 노래와 함께 그 자리에 영원히 남았다.
<여름>은 이정선, 김영미, 이광조, 한영애로 이루어진 그룹 해바라기가 1979년에 발표한 <해바라기 2집>에 들어 있다. 내 취향엔 한국 가요사를 통틀어 세 손가락 안에 꼽을 명반이고 명곡이다. 시대의 바람이 노래를 통해 드러난 게 아니라 노래가 바람을 일으켜 한 시대 젊은이들의 가슴 속 여름을 흔들었다. 1980년대를 풍미(風靡)하며 한 시대의 여름을 노랫말과 선율로 영원히 고정했다. 한영애의 목소리는 밤논가에서 반딧불이를 부르는 찔레 가시처럼 뜨겁고 간절하다. 갈대숲 사이로 빠져 나가는 바람처럼 섭섭하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서 여주 조이서가 사랑하는 남자에게 대차게 거절당하는 장면은 아름답다. 절망에 가까운 서운함을 그토록 아름답게 표현하는 배우가 있다니 경이롭다. 이 드라마가 끝나면 섭섭할 것 같다. 김다미가 연기하는 조이서가 보고 싶을 것 같다.
“안 먹은 것 같아요.”
전주남부시장콩나물해장국을 먹고 어떤 여성이 했던 말이 잊혀지질 않는다. 섭섭한 맛일까?
“안 만난 것 같아요.”
내가 누군가를 만나고 나서 할 수 있는 말일까? 안 만난 것 같은 맛은 좋은 맛일까?
“자주 봐야 하는데.. 다음 번엔 소주 한잔 하자.”
민수 형이 카드를 대야 통과하는 전경련빌딩 속 엘리베이터 대기열로 빨려 들어가며 내게 말했다. 형은 내게 커뮤니케이션이 무엇인지 가르쳐 준 사람이다. 민수 형은 섭섭한 맛을 내는 사람이다. 형을 만나고 돌아서면 빈 맛이 난다. 영원히 반복될 것 같은 맛이다.
봄이 가는 것은 서운하고 여름이 가는 것은 섭섭하다. 가을은 생각만 해도 쓸쓸하다. 봄이 가는 것은 왜 서운할까? 너무 아름다워서다. 아름다움엔 만족이라는 경지가 없다. 가을은 왜 그리 쓸쓸한가? 여름이 길어서다. 쓸쓸함에는 끝이 있다. 여름 안에 있으면 힘들지만 안락하다. 나는 젊고 미래는 길다는 느낌이 주는 위안이다. 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섭섭함을 느꼈고 더 많은 사람들을 서운하게 했다. 내가 섭섭하다는 것은 이토록 잘 느끼면서도 남이 서운해 하는 것은 알지 못했다. 길었던 여름의 후유증으로 마음에 재가 내린다. 나는 여름을 사랑하느라 여름에만 할 수 있는 일을 다 못했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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